과거에는 파란색이 없었다? 고대 언어에서 파란색 단어의 부재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바다를 ‘와인 빛(oinops pontos)’이라 묘사했습니다.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 표현은, 단순히 시적 허용을 넘어 고대인의 색채 인식 체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고대인들은 우리와 같은 세상을 보았을까요? 하늘과 바다의 푸르름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이 의문은 19세기 영국 정치가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연구에서 시작되어, 언어학자 라자루스 가이거를 거치며 ‘고대 언어에는 파란색을 지칭하는 단어가 부재했다’는 놀라운 가설로 발전했습니다. 이 가설은 단순히 특정 단어의 유무를 넘어,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인식을 어떻게 구성하고 제약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본 글에서는 호메로스의 묘사에서 출발하여 고대 주요 문명권의 언어 자료를 분석하고, 파란색 단어가 인류 역사에 등장하게 된 배경을 추적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색채라는 감각적 경험이 결코 보편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특정 시대의 문화적, 기술적 환경과 언어적 틀 안에서 구성되는 상대적인 산물임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세계가 언어라는 프리즘을 통해 굴절된 모습일 수 있다는 인식론적 전환을 요구하며, 고대인의 눈을 통해 우리 자신의 인식 체계를 성찰하는 지적인 여정으로 독자를 안내할 것입니다.
호메로스의 ‘와인 빛 바다’, 고대의 색채 인식에 던져진 질문
모든 논의의 시작은 19세기 중반, 영국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고전학자였던 윌리엄 글래드스턴(William Gladstone)의 집요한 탐구에서 비롯됩니다. 네 차례나 총리를 역임한 그는 정치 활동의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원전으로 탐독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그는 방대한 텍스트 속에서 색채를 묘사하는 모든 표현을 세밀하게 분석하던 중, 극도로 기이한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호메로스의 세계에서 검은색(melas)은 약 200회, 흰색(leukos)은 약 100회 등장하며 붉은색(erythros)과 노란색(xanthos) 또한 빈번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색 중 하나인 파란색(blue)을 지칭하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종종 ‘청동(bronze)’으로, 바다는 그 유명한 ‘와인 빛(wine-dark)’으로 묘사되었을 뿐, 우리가 ‘푸르다’고 인식하는 그 어떤 대상도 명시적인 파란색으로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체계적인 부재였습니다. 글래드스턴은 이를 근거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현대인과 다른 색각을 지녔으며, 색채를 구분하는 능력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다소 급진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의 주장은 당시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는 곧 다른 고대 문명권의 언어로까지 연구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언어학자 라자루스 가이거(Lazarus Geiger)는 글래드스턴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연구를 심화시켰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서, 인도의 베다 경전, 고대 중국의 문헌, 아이슬란드의 사가(Saga) 등 광범위한 고대 텍스트를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파란색을 의미하는 단어는 이들 문헌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가이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세계 언어에서 색채를 지칭하는 어휘가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발달한다는 ‘색채 어휘의 계통 발생학적 보편성’을 주장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언어는 빛과 어둠을 구분하는 흑백(black/white)에서 시작하여, 피와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색(red), 그리고 식물이나 태양을 연상시키는 녹색/노란색(green/yellow) 순으로 어휘를 발달시킵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파란색(blue)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파란색 단어의 부재가 특정 문화권에 국한된 현상이 아닌, 인류 보편적인 언어 발달 과정의 한 단계를 반영한다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이들의 연구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고대인들은 정말로 파란색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분명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별개의 색으로 인식하고 명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의 생물학적 시각 능력과 언어적 범주화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언어는 인식을 지배하는가: 파란색 단어의 탄생과 그 의미
고대 언어에서 파란색 단어가 보편적으로 부재했던 현상은, 그들이 생리적으로 색맹이었다는 가설보다는 언어와 인식의 관계라는 더 깊은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현대 언어학 및 인지과학에서 중요한 화두인 ‘언어 상대성 가설(Linguistic Relativity Hypothesis)’, 또는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은 이 미스터리를 푸는 핵심적인 열쇠를 제공합니다. 이 가설의 핵심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계를 인식하는 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즉, 특정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의 존재 유무가 그것을 인지하고 범주화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파란색의 경우, 이러한 언어적 영향력은 기술 및 문화적 맥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연계에서 순수한 파란색은 의외로 희귀합니다. 하늘과 바다는 손에 잡히는 실체가 아니며, 파란색을 띤 동식물 또한 다른 색에 비해 그 수가 현저히 적습니다. 고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파란색을 접하고, 그것을 다른 색과 뚜렷이 구분하여 활용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파란색 안료’의 부재였습니다. 고대인들은 흙이나 식물, 광물에서 얻은 안료로 염색을 하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붉은색이나 황토색, 검은색 안료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안정적이고 선명한 파란색 안료를 만드는 기술은 고도의 화학적 지식과 자원을 필요로 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공적인 파란색 안료를 발명한 문명은 고대 이집트였습니다. 그들은 기원전 2,200년경, 석영 모래와 구리, 석회석 등을 함께 가열하여 ‘이집션 블루(Egyptian Blue)’라는 세계 최초의 합성 안료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집트인들이 파란색 안료를 생산하고 그것을 장신구나 벽화, 미라 관 등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그들의 언어에는 파란색을 지칭하는 단어가 명확하게 등장하게 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특정 색을 인공적으로 ‘생산’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자, 비로소 그것을 다른 색과 구분하여 부를 ‘필요성’이 생긴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언어의 분화를 촉진하고, 새롭게 탄생한 언어는 다시 사람들의 인식을 더욱 정교하게 만듭니다. 이는 언어 상대성 가설의 ‘약한 버전(weak version)’을 지지하는 강력한 사례입니다. 언어가 인식을 완전히 결정한다는 ‘강한 버전(strong version)’과 달리, 약한 버전은 언어가 우리의 생각과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파란색이라는 단어가 없던 고대인들도 하늘의 색을 보았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희끄무레한 색, 혹은 특정 종류의 밝은 색 정도로 범주화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별도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색들과의 경계가 모호하고 그 색에 대한 민감도나 주의력 또한 낮았을 것입니다. 현대의 연구 역시 이를 뒷받침합니다. 아프리카의 힘바(Himba) 부족은 언어에 파란색과 녹색을 구분하는 단어가 없는 대신, 다양한 종류의 녹색을 세분화하여 부르는 여러 단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여러 녹색 타일과 파란색 타일 하나를 섞어 보여주면, 우리 눈에는 확연히 띄는 파란색 타일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미묘한 차이의 녹색 타일들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구분해냅니다. 결국, 파란색의 부재는 시각적 결함이 아니라, 언어적 범주화의 부재였던 것입니다.
인식의 지평을 넓히다: 고대인의 눈으로 본 세상과 현대적 고찰
‘과거에는 파란색이 없었다’는 도발적인 명제는, 최종적으로 ‘과거에는 파란색이라는 개념과 언어적 범주가 없었다’는 결론으로 수렴됩니다. 고대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색이 바랜 흑백 필름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동일한 망막과 시신경을 가지고 가시광선 스펙트럼을 인지했지만, 그들이 가진 언어적 도구는 그 스펙트럼을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분절하고 해석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와인 빛 바다’라는 표현은 그들이 색맹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감각 세계가 얼마나 유연하고 다층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시적인 증거입니다. 그들에게 바다의 색은 단순히 고정된 ‘파랑’이 아니라, 해 질 녘 와인의 깊고 어두운 빛깔, 포도주의 표면에서 일렁이는 광택, 혹은 그 안에 담긴 신비로움과 위험함까지 함축하는 복합적인 이미지였을 것입니다. 이는 색채 인식이란 단순히 빛의 물리적 파장을 감지하는 생물학적 과정을 넘어, 문화와 언어, 경험이 총체적으로 개입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해석의 과정임을 웅변합니다. 파란색의 역사는 이러한 해석의 과정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고대에는 존재조차 희미했던 이 색은, 중세 시대에 이르러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된 값비싼 청금석(Lapis lazuli)으로 만든 울트라마린(Ultramarine) 안료 덕분에 성모 마리아의 옷을 칠하는 신성한 색, 왕족과 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으로 격상되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는 합성 안료 기술의 발달로 대중화되었고, 오늘날에는 신뢰, 안정, 이성을 상징하며 수많은 기업의 로고와 청바지의 색으로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색이 지닌 의미와 위상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합의,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언어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됩니다. 고대 언어에서 파란색 단어의 부재를 탐구하는 여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철학적 성찰을 안겨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틀 안에서 세상을 보고 생각하며, 이 언어적 틀이 우리의 인식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설정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수많은 개념들, 예를 들어 ‘사랑’, ‘정의’, ‘행복’과 같은 추상적인 가치들 역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에 의해 그 의미와 범위가 규정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현대의 우리 역시, 미래의 인류가 보기에는 아직 명명되지 않은 어떤 중요한 감각이나 개념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고대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우리 자신의 인식 체계가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조망하게 하는 겸허한 기회입니다. 언어라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세상의 전부는 아님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넓고 깊은 인식의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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