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돌 크기의 비밀: 검은 돌(흑)이 흰 돌(백)보다 조금 더 큰 착시 교정

착시 현상을 교정하기 위해 흰 돌보다

바둑돌에 숨겨진 시지각의 과학: 흑돌이 백돌보다 미세하게 큰 이유를 파헤치다
정교함과 균형의 상징인 바둑판 위, 흑과 백의 돌들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이 지적 유희의 도구에는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미세한 비대칭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검은 돌, 즉 흑돌이 흰 돌인 백돌보다 직경이 아주 조금 더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제작상의 오류나 우연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시각적 인지 특성을 고려한 지극히 과학적이고 의도적인 설계의 결과물입니다. 우리의 눈은 동일한 크기의 물체라도 색상에 따라 그 크기를 다르게 인식하는 착시 현상을 경험하는데, 밝은 색은 어두운 색보다 더 커 보이는 '광학적 팽창(Irradiation Illusion)' 효과가 바로 그것입니다. 바둑돌의 크기 차이는 바로 이 착시를 교정하여, 바둑판 위에 놓였을 때 흑돌과 백돌이 시각적으로 동일한 크기로 보이게 함으로써 완벽한 심미적 균형감을 선사하기 위한 장인의 깊은 통찰과 배려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본 글은 바둑돌이라는 작은 오브제에 적용된 시지각 심리학의 원리를 심도 있게 탐구하며, 팽창색과 수축색의 개념을 통해 흑돌이 백돌보다 커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명확하게 분석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세심한 디자인 철학이 비단 바둑의 세계를 넘어 현대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 설계에 어떠한 시사점을 던지는지에 대해서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정중동의 미학, 그 속에 숨겨진 비대칭의 비밀

고요한 사각의 판 위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수의 향연, 바둑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동양적 사유와 철학이 응축된 지적 예술로 평가받습니다. 반상(盤上)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 즉 반듯한 직선과 교차점, 그리고 그 위를 채우는 흑과 백의 돌들은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전제로 하는 듯 보입니다. 우리는 흑돌과 백돌이 형태와 크기 면에서 완전히 동일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가정하며, 이러한 대칭성이야말로 바둑이 추구하는 공정성과 미학적 안정감의 근간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 실제 고급 기원에서 사용되는 바둑돌을 정밀하게 측정해 본다면, 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전제는 미세한 균열을 보입니다. 규격에 따르면, 흑돌의 직경은 백돌의 직경보다 통상적으로 약 0.3mm에서 0.6mm가량 더 크게 제작됩니다. 예를 들어, 일본기원 규격의 경우 백돌이 21.9mm라면 흑돌은 22.2mm로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차이는 육안으로 단번에 식별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의도된 비대칭성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정교함을 요하는 기물에 이와 같은 불균형을 의도적으로 부여한 것일까요? 이는 결코 제작 과정의 오차나 무작위적인 결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의 시지각 시스템이 가진 본질적인 한계와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보완하려는 고도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결과물입니다. 이 미세한 크기의 차이는 물리적 세계의 동일함이 아닌, 인간이 인지하는 감각적 세계의 동일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필연적 귀결인 셈입니다. 본고는 이처럼 바둑돌의 크기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침으로써, 바둑이라는 전통 속에 깃든 과학적 원리와 인간 중심적 설계의 지혜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기물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인지 과정을 고려한 디자인의 정수가 어떻게 수백 년의 세월을 관통하며 그 가치를 유지해왔는지를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팽창색과 수축색: 착시 현상의 과학적 원리

흑돌이 백돌보다 물리적으로 더 커야만 했던 이유의 핵심에는 '광학적 팽창(Irradiation Illusion)'이라 불리는 시지각 현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19세기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생리학자인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에 의해 체계적으로 연구된 개념으로, 밝은 배경 위의 어두운 물체보다 어두운 배경 위의 밝은 물체가 더 크게 보이는 착시를 의미합니다. 우리 눈의 망막에 빛이 도달하면, 망막의 시세포들은 완벽하게 빛을 한 점으로 수렴시키지 못하고 미세하게 번지는 현상을 일으킵니다. 특히 밝은 빛은 주변의 시세포들까지 자극하며 그 경계가 실제보다 바깥으로 확장되어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명도가 높은 색, 즉 흰색과 같은 '팽창색(Expanding Color)'은 실제 크기보다 더 넓게 보이는 반면, 명도가 낮은 검은색과 같은 '수축색(Contracting Color)'은 빛을 흡수하여 경계가 명확해지므로 상대적으로 더 작고 단단하게 보이는 효과를 낳습니다. 바둑판은 보통 황갈색의 어두운 목재로 만들어지므로, 이 위에서 백돌은 팽창색으로서의 특성이 극대화됩니다. 백돌의 밝은 표면에서 반사된 빛이 주변의 어두운 바둑판과 대비를 이루며 그 경계가 팽창하여 실제보다 더 큰 부피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흑돌은 어두운 바둑판의 색과 유사하여 배경에 일부 흡수되는 듯한 인상을 주며, 수축색으로서의 특성 때문에 실제 크기보다 미세하게 작아 보이는 착시를 유발합니다. 만약 흑돌과 백돌이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크기로 제작된다면, 바둑판 위에 놓였을 때 플레이어의 눈에는 백돌이 흑돌보다 확연히 더 크고 두드러져 보이는 시각적 불균형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게임의 몰입을 방해하고 심미적 안정감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둑 장인들은 이러한 인간의 보편적인 시지각적 착오를 교정하기 위해, 착시로 인해 작아 보이는 흑돌의 물리적 크기를 의도적으로 키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흑돌의 직경을 백돌보다 약 0.3mm 크게 만듦으로써, 팽창하는 백돌과 수축하는 흑돌이 최종적으로 반상 위에서 시각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크기로 인식되도록 정밀하게 조정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눈대중이나 감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관찰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이고 인간공학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균형을 향한 보이지 않는 배려: 바둑돌 디자인의 미학

결론적으로, 흑돌과 백돌의 미세한 크기 차이는 단순한 물리적 비대칭을 넘어,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보완하여 궁극적인 시각적 균형을 성취하려는 깊은 통찰의 산물입니다. 이는 '보이는 대로의 세계'가 아닌 '인식되는 대로의 세계'에 초점을 맞춘 고도의 디자인 철학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바둑의 본질이 조화와 균형의 추구에 있음을 상기할 때, 물리적인 수치를 희생하여 감각적인 평형을 이루어낸 이 설계는 바둑의 정신을 기물에까지 완벽하게 구현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는 비단 바둑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현대의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한 원리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이포그래피에서 흰 배경에 사용되는 검은색 글자와 검은 배경에 사용되는 흰색 글자는 시각적 무게감을 동일하게 맞추기 위해 굵기나 자간을 미세하게 조정합니다. 웹디자인이나 UI/UX 설계에서도 어두운 모드(Dark Mode)에서의 흰색 텍스트나 아이콘이 너무 도드라져 보이지 않도록 명도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이는 모두 사용자가 인지하는 최종적인 결과물의 균형과 가독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인간 중심 디자인의 발현입니다. 바둑돌의 크기 차이는 수백 년 전 장인들이 경험적으로 체득한 인간 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현대 과학의 원리와 정확히 일치함을 증명하는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균형이란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동일하게 만드는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각 요소의 고유한 특성과 그것이 놓이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모두 고려하여 최종적인 조화를 이끌어내는 지혜로운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바둑판 위에 놓인 돌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단지 흑과 백의 대결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불균형을 통해 완벽한 지각적 균형을 이룩한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위대함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작은 바둑돌 하나에 담긴 과학과 미학의 조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창작자와 설계자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살아있는 교훈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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